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쿠가와 이에미츠 (문단 편집) == 쇼군이 되기까지 == 히데타다의 적자이자 장남으로 유력한 후계자였지만, 이때까지만 해도 장자가 반드시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는 룰은 없어 [[센고쿠 시대]]에는 다이묘에게 여러 아들이 있으면 그 가운데 우수한 인물이 후계자가 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. 그래서 이에미츠는 [[쇼군]]이 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어야했다. 어린 시절에는 병약하고 얼굴도 못생긴 데다가 말까지 더듬었다고 하는데 유모(乳母)인 [[카스가노츠보네]]로부터 젖먹이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보살핌을 받았다. 어머니인 [[스겐인|오에요]]가 차남인 쿠니마츠[* [[도쿠가와 타다나가]]의 아명]를 더 총애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[* 오에요가 차남을 편애한 것은 남편인 히데타다와 오후쿠([[카스가노츠보네]]) 사이를 의심해서, 그 질투로 오후쿠가 기르다시피한 장남 이에미츠까지 싫어했다는 [[썰]]이 있다.] 명확한 증거는 없다. 하여튼 후계자 자리가 쿠니마츠가 될 뻔했던 것은 맞지만, 후계 자리에서 탈락해 폐적될 것을 우려한 [[카스가노츠보네]]가 목숨을 걸고 [[도쿠가와 이에야스]]에게 직접 이를 호소한 덕에 이에야스가 '''[[장유유서]]'''의 원칙을 명확히 해 후계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도 전한다. 일개 유모가 천하의 [[오고쇼]] 이에야스와 독대해서 직소가 가능했다는 점에서 실은 이에미츠가 이에야스와 카스가노츠보네사이의 자식이었다고 보는 설도 있긴 하다. 다만 친자식끼리도 편애는 가능하고 오에요의 신분이나 성격을 감안하면 역시 진위성에는 의심이 간다. 이에야스는 이즈음 [[스루가]]의 슨푸 성에 거처하며 유학자들에게서 유학을 배우고 있었고, 손자간의 후계자 다툼은 나중에 [[도쿠가와]] 집안의 분란과 후환이 될 것을 염려해 유학의 [[장유유서]]의 서열을 정착시키고자 장손인 이에미츠를 후계자로 정하기로 마음먹었다. [[쇼군]]에서 물러나 [[오고쇼]]가 되어 아들 히데타다와는 이원 정치를 하고 있었지만, 큰 정책은 이에야스가 결정하고 있었다.[* 사실 이에야스는 쇼군직을 단 2년만 했었다. 하지만 그 고생을 해서 거머쥔 천하를, 단 2년만 해먹고 은퇴하려겠는가.] 당시 [[에도 막부]]의 가신들은 장남인 타케치요파와 차남인 쿠니마츠파로 갈라져서 후대의 쇼군이 누가되느냐로 분열 상태에 있었다. [[카스가노츠보네]]와 면담을 가진 뒤, [[1611년]] [[10월 24일]], 할아버지 이에야스는 [[에도 성]]으로 찾아와서 아들인 히데타다가 지켜보는 앞에 두 손자를 불러 이에미츠가 후계자라는 것을 확실시했다. 기록에 의하면, 타케치요[*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아명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조부때부터 내려온 장자에게 내려지는 아명이다. 따라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어릴 적엔 마쓰다이라 타케치요라는 이름이었다.]에게 이리로 오라고 상석으로 불러 앞으로 나와 앉으라고 했는데, [[도쿠가와 타다나가|쿠니마츠]]가 따라 앉으려고 하자 이에야스는 "쿠니는 거기 있거라."라며 하석에 앉게 했다. 또 두 아이에게 과자를 대접하면서, "먼저 타케치요가 먹어라, 쿠니마츠는 그 다음."이라고 말했다. 이로써 [[도쿠가와]] 가문의 후계자는 이에미츠이며, 둘 사이에는 넘어서는 안 되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. 그리고 이에야스는 두 아이의 어머니인 오에요에게 편지를 보내 쿠니마츠만을 편애하는 것을 질책하기도 했다.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이에미츠가 후계자로 선택된 것은 아버지 히데타다보다 할아버지 이에야스의 의중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한 듯 하다.[* 물론 히데타다 또한 이에야스 사후에도 후계자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, 그대로 이에미츠를 자신의 후계자로 선정한 것을 보면 히데타다 역시 최소한 이에미츠를 후계자로 삼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